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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이혼'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총정리

Issue by RIAHNY 2024. 11. 9.

시작도 '세기의 결혼', 하지만 35년 만에 맞은 파국

 1988년 가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세기의 결혼식'으로 시작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35년 결혼 생활이 이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SK그룹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수장과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상징성에 더해, 1조 3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분할 금액까지 걸린 이 소송은 한국 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부부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이들의 결혼 생활은 2010년 최태원 회장의 혼외자 출산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2011년부터 별거에 들어간 부부는, 2015년 12월 최 회장이 세계일보에 보낸 서신을 통해 혼외자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그들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후의 전개는 극적이었습니다. 2017년 7월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으로 시작된 법적 공방은, "가정을 지키겠다"던 노 관장의 강경한 입장으로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2019년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씨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두 사람이 공동으로 설립한 티앤씨재단이 대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결국 노 관장은 2019년 12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혼에 동의하면서 맞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세 자녀들의 입장이었습니다. 2023년 5월, 차녀 최민정, 장남 최인근, 장녀 최윤정은 잇따라 2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혼외정사와 혼외자 출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어머니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러한 자녀들의 탄원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1심 판결, 위자료 1억 원과 665억 원의 재산분할 

 2022년 12월, 서울가정법원은 최태원 회장 측의 이혼 청구는 기각하고 노소영 관장 측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심의 핵심은 SK주식을 최태원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재판부는 SK주식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증여받은 재산이며, 노소영 관장이 주식 가치 형성과 유지, 증식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자료 1억 원은 법원이 이혼 사건에서 선고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지만, 재산분할 금액은 노 관장 측이 요구한 금액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뒤집힌 2심 판결, 재산분할금 1조 3808억 원

그러나 2024년 5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은 이 모든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전체 재산을 약 4조 115억 원으로 보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분할 비율을 65대 35로 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은 1조 3808억 원으로 책정되었고, 위자료도 2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되었습니다.

 2심에서 왜 이처럼 극적인 판단 변화가 있었을까요? 2심 재판부가 1심의 판단을 뒤집은 데는 세 가지 핵심적인 근거가 있었습니다.

 첫째, SK주식을 더 이상 최태원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1994년 선경증권 주식 70만주 취득 과정을 검토한 결과, 최종현 회장 명의 계좌에서 인출된 자금의 흐름이 명확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최 회장 측은 이 주식이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부부가 공동으로 조성한 자금으로 취득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둘째, SK그룹 성장 과정에서 노소영 관장 측의 기여를 인정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991년 선경그룹의 증권업 진출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이 유입되었다고 본 점입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하던 '300억 원 약속어음' 메모를 증거로 인정했고, 이를 통해 SK그룹 성장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35년이라는 긴 혼인기간 동안 노 관장의 내조와 가사노동이 SK그룹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1998년 최종현 회장 사망 이후 약 20년간 SK그룹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점을 고려할 때, 최태원 회장의 경영은 단순히 상속받은 재산의 관리를 넘어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2심 판결에 최태원 회장 측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과 관련해 "어떠한 실체도 없고 사실로 입증된 바도 없는 추측성 주장"이라며, 약 500쪽 분량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며 대법원 판단을 요청했습니다.

최 회장과 그의 동거인 김희영 씨
최 회장과 그의 동거인 김희영 씨

 

대법원 심리와 향후 시나리오

 2024년 11월 8일,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를 결정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대법원이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데, 이번에는 심리를 계속하기로 한 것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이 단순한 이혼 소송을 넘어 기업 경영권과 재산분할에 관한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SK주식의 특유재산 해당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2심에서 인정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 관련 증거의 신빙성입니다. 여기에 2심 재판부가 대한텔레콤 주식가치 산정을 주당 100원에서 1000원으로 수정했음에도 재산분할 비율을 유지한 것의 적절성도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향후 전개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됩니다. 첫째,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최태원 회장이 1조 3천억 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둘째, 일부 파기환송되는 경우로, 재산분할 금액은 조정되더라도 상당한 규모의 재산분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전부 파기환송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SK그룹 경영에도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2025년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세기의 이혼소송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은 단순한 개인의 혼인관계 종료를 넘어 한국 사회에 여러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선 여성의 가사노동과 내조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한층 진일보했음을 보여줍니다. 2심 재판부는 35년 동안의 혼인생활에서 아내의 내조와 자녀 양육이 남편의 기업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했습니다. 이는 전업주부의 무형적 기여를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또한 재벌가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 재벌가의 이혼은 대개 비공개로 조용히 처리되었고, 여성 배우자의 권리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자녀들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여성 배우자의 정당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업 경영권과 개인의 재산권 사이의 균형에 대한 법원의 시각입니다. 2심 재판부는 기업의 안정적 경영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배우자의 정당한 재산분할청구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향후 유사한 재벌가 이혼 사건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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